한인애국단
한인애국단은 1931년 중국 상하이에서 조직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 일본의 주요인물을 암살하려고 만들어진 조직이다.
일제 감정기 시절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그중에서 비빌조직인 한인애국단을 통해 일제의 주요인물 제거를 목표로 활동을 계획했다. 이조직은 1926년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중심이 되어 김석, 안공근, 이수봉, 이유필 등을 간부로 한인애국단의 조직을 운영하였고 조직 단원으로는 유상근, 유진만, 윤봉길, 이덕주, 이봉창, 최흥식 선생님 등이 참여 하였다.
한인애국단은 독립운동의 새로운 활로로써 일본의 주요인물들을 암살하고 일본 국가의 운영 체계나 다외 침략을 좌절시키는데 그 목포를 세웠는데 이는 소수 지도자를 제거하여 큰 성과를 올리려는 목표를 가지고 조직을 운영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조직은 독립운동의 비밀결사 조직이고 이후 3.1운동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독립운동의 의지가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마구 잡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국외로 망명을 하게 된다.
이 시기에 김구 선생님도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의 경무국장에 취임하고 곧이어 내무총장과 국무총리 대리 그리고국무령을 지내시면서 임시정부를 이끄셨다. 나라를 잃은 우리나라에 있어 임시정부 수립이란 곧 우리 국민들에게 한자락 희생의 불빛이 있었기에 김구 선생님은 1928년 이동녕, 이시영, 조소앙,안창호,조완구 선생님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결정하신 후 당수가 되어 1929년 재중국 거류민단 장도를 함께 맡으셨고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김구선생님은 그 일환으로 1931년 한인애국단을 조직하여 지도력을 보여 주셨고 1932년 선생님의 지휘 아래 있었던 이창봉 열사가 일본 천황을 저격하려다가 실패하였고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공원에 도시락 폭탄을 던지는 등 무력 활동을 직접 지휘하였고 1933년 김구 선생님은 중국 장개석을 만나 광복군무관 양성소의 설치에 합의하였고, 1935년에는 이동령 조완구 등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임시정부의 지지세력이 될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심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못하는 독립운동을 중국에서 다방면으로 몸소 하였다.
김구선생님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보다 적극적으로 조직을 운영하였는데 1931년 말 일본 국왕을 암살하기 위해 이봉창 대원을 동경으로 비밀스럽게 잠입시켰고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열사는 일본 앙 히로히토가 만주괴로국 부의와 함께 동경 교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쿠라다문 앞에 도달하자마자 바로 폭탄을 던졌으나 너무 안타깝게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만 피해를 주고 일본 국왕 저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로 인해 김구 선생님은 이봉창 열사가 그해 10월 사형을 당해 차다찬 이슬로 사라지는 아픔을 몸소느꼈다.
1932년 4월 29일 김구 선생님은 윤봉길 의사를 항하이 홍코우공원에서 거행된 전승기념 겸 일본 왕의 생일 기념식장에 잠입시킴으로써 윤봉길은 행사가 거행되던 중 단상에 폭탄을 던져 사라카와 사령과느 우에다 육군대장, 노무라 해군 중장, 시게미쓰 주공 공사 등 무려 7명을 현장에서 즉사 또는 중상을 입히는 거사를 단행한 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처형 당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또한 김구 선생님의 지휘 아래 1932년 4월 이덕주와 유진만이 조선 총독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였고 최흥식과 유상근은 국제연맹 조사단원을 함살하려다 안타깝게 발각되기도 했다.
한인애국단을 통해 독립운동을 펼쳐나갔던 큰업적을 남김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기억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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