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71: 벨파스트의 눈물, 북아일랜드 투쟁 가운데 내던져진 병사

dachshund-dream 2018.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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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벨파스트의 눈물, 북아일랜드 투쟁 가운데 내던져진 병사

아일랜드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은 아일랜드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독립투쟁으로 결국 아일랜드를 반환 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북아일랜드 지역만은 영국령으로 남겨 놓게 된다.  이렇게 된건 북아일랜드에 영국이 집단 이주를 시킨 신교도를 때문인데, 이들을 한국적 상황으로 본다면 과거 조선에 정착한 일본인 이주민 격이다.

일본은 패전 직후 대부분 일본으로 자진 귀향했지만 영국에서 이주한 신교도들은 북아일랜드의 정치, 경제를 장악하고 뿌리를 내렸으며 카톡릭을 믿는 토착 아일랜드 주민들과 끊임없이 대립을 한다. 

(영화포스터: 71 벨파스트의 눈물 [포스터 ⓒ  www.71-film.com, (주)액티버스엔터테이먼트 .포토샵, 편집:닥스훈트의 꿈)


영화 초반에 보면 구교 신교 지역을 색깔로 표시하고 영국군이 작전을 펼치는 내용이 나오는데 위에 열거한 역사적 상황을 본다면 그들이 왜 이런 지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건지 단박에 이해가 될것이다. 그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엄청난 차별때문이라는걸 알면 좀 놀랄것이다.

71 벨파스트의 눈물은 폭동 진압을 위해 북아일랜드로 파견된 영국군이 대열에서 낙오되어 생존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을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있는 영화이다. 

영화속에서 잉글랜드 군인들은 가톡릭교 주민들을 돕기 위해 동원되지만 실제로 경찰들은 무기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가택수색을 하고 이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벌어진다.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온 주인공은 특별한 이유없이(착해보이는 주민)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을 보고 패닉에 빠지고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주인공이 겪는 이러한 상황에 관객도 함꼐 빠져들것 같은 스토리로 연결되고 있다.


1971년 영국인 후크(잭 오코넬)는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된다. 모진 후련을 끝내고 마침내 실전에 배치되던 날, 부대 내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긴박하다. 그가 배치된 곳은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벨파스트 였다. 이곳에서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구교도와 영국의 잔료를 주장하는 신교도 사이에 갈등이 폭발,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었다. 이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영국군이 주둔하게 됐고, 후크 이등병은 공식적으로 이 부대에 합류하게 된다.

현장에 배치된 첫날 후크는 IRA(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주장하는 반 군사조직) 색출 작전에 투입된다. 이곳의 풍경은 더없이 살벌했다. 가택을 수색하는 영국의 경찰과 군인에 반감을 드러내던 북아일랜드 인들이 거리로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시위대가 던진 돌 등에 의해 군인들이 맞아 부상자가 속출하고, 이에 흥분한 군중들은 더욱 거칠어져 갔다. 그때 부상당한 군인이 놓친 총을 한 소년이 탈취하여 도망을 가고, 후크와 그의 동료는 그 뒤를 쫓는 다. 그 사이 충돌은 더욱 격해져, 이를 피하기 위해 영국군을 퇴각을 결정하게 된다.


(영화캡쳐그림: 71 벨파스트의 눈물 [포스터 ⓒ  www.71-film.com, (주)액티버스엔터테이먼트 .포토샵, 편집:닥스훈트의 꿈)


후크와 그의 동료 만이 현장에 남겨진 상황, 총기 회수를 위해 열심히 임무수행 중이던 그들은 북아일랜드인들에 둘러싸여 집단 폭행을 당한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 닥친 일군의 청년들에 의해 호크의 동료가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지게 된다. 곁에서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한 후크는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직감하고, 그 곳으로 부터의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는 데 북아일랜드는 섬나라인 영국 바로 왼쪽의 또 다른 섬인 아일랜드 위쪽에 위치해 있다. 벨파스트는 바로 북아일랜드의 수도이다. 이곳의 시민 대부분은 신교도이며 구교도는 대략 25% 가량을 가지한다. 그 동안 신교도와 고교도 간 다툼은 끊임 없이 어어져 왔다. 특히 아일랜드가 영국으로 부터 독립한 이래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원하는 구교도의 주민과 다수인 신교도 주민과의 대립은 지속됐으며, 1968년 이래 유혈 충돌이 빈번해지자 1969년 영국군이 북아일랜에 주둔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3개의 스토리로 그러져 있는데 우선 당시의 북아일랜드 상황이다. 영국으로 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던 구교도와 다수의 신교도간의 충돌은 이 영화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이야기이다. 물론 영화는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 간에 얽힌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아무런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있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한 시선으로, 마치 제 3자인 양, 1971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실제로 있었을 법한 시위 현장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인 후크가 두번째 이야기로 벨파스트의 혼란스러운 현장 속에 혼자 내던져진 후크라는 영국 군인의 모습은 흡사 벨파스트와 비견될 만큼 혼돈의 도가니다. 그는 북아일랜드와는 전혀 관계 없는 제 3자로서, 철저하게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를 그가 겪게 되는 불편은 안타깝게 짝이 없게 다가온다.


영화캡쳐그림: 71 벨파스트의 눈물 [후크 ⓒ  www.71-film.com, (주)액티버스엔터테이먼트 .포토샵, 편집:닥스훈트의 꿈)


마지막으로 후크가 몸 담고 있는 군 조직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후크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임이 틀림 없지만, 현실은 그가 생각하고 있고 또한 우리가 바라는 만큼 녹록지가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더구나 전시라는 특수 환경에서는 모든 가중치가 개인보다는 집단으로 기울어지기 일쑤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영화속에 언뜻 비치는 영국군의 북아일랜드인들을 향한 반감은 북아일랜드인들의 영국인을 향한 그것 이상으로, 커 보인다.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여 가택 수색하는 과정에서 북아일랜드 인들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폭력은 가히 위협적이라 할만하다. 이를 목격한 북아일랜드 인들의 감정이 폭발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정도이다. 


후크 이등병은 영국군에게는 적지나 다름없는 북아일랜드 시위 현장에 홀로 남겨졌다. 주변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일견 쉽게 구조될 법도 한데 그렇지 못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가 몸 담고 있는 군 조직과 관련한 사안이다. 동료가 목숨을 잃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가까스로 달아나 목숨을 부지한 후크는 고위 군 간부의 스파이 행위를 목격하게 된다. 물론 이는 자신의 부대와도 관련이 있다.

구조가 늦어지게 되면서 후크가 격게 되는 불편은 이만 저만이 아닌 것이다. 상상 이상이다. 북아일랜드나 아일랜드와는 전혀관련이 없는 데다 관심조차 없는 사람이 었기에 그가 겪는 고통과 아픔은 배가 될 수 밖에 없다.


후크의 믿음은 사실상 강력한 위계질서와 명령체계에 의해 유지되는 거대한 조직 앞에서 산산조각나고 만다. 북아일랜드 사태는 후크에게는 더 없이 혼란스럽게 다가올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고초와 군 조직의 형태는 그의 혼을 완전히 뺴놓기에 충분하다. 후크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채 목숨이 경각해 달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생명을 구해준 의무장교 출신 북아일랜드인의 조직은 일개 병사를 그저 파리 목숨으로 취급한다는 말이다.


역사적인 배경은 1960년대말 이후부터는 가톨릭교도와 신교도간에 종교갈등의 긴장과 폭력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평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종파별로 거주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굿 프라이데이 협정 이후 허구한날 총폭탄이 날아다니던 험악한 전쟁 시절은 끝났지만, 여전히 도시 곳곳에 peace line이라 하며 충돌 소지가 있는 민족주의(친아일랜드) 계열 주민과 연합주의(친영국) 계열 주민들 거주 구역 사이에 쳐진 장벽들과, 여기에 그려진 전투적인 정치적, 역사적 벽화들을 보면 여기가 최근까지 분쟁지역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물리적 충돌은 이제 확실히 수그러들었어도 종종 경찰차나 반대 집단의 퍼레이드에 화염병을 던지고 튀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폭력적인 행위가 종종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IRA 조직은 공식적으로 무장해제했지만 "언제 다시 무기가 필요할지 모른다"라는 마인드로 여전히 당국 몰래 총기를 숨겨놓은 경우는 흔한 편이며, 불법 무기 소지로 누가 체포당하는 일이 2010년대 현대 까지도 종종 있었다. 당장 경찰차만 보더라도 이곳에서는 일반 차량이 아니라 중무장한 방탄 장갑차가 기본이다.


평화협정 이후 할 일이 없어진 IRA나 개신교계 민병대 매파들은 그 관심을 자기 동네 내 마약 사범이나 조직 범죄 단체 같은 좋게 말하면 내부 치안, 안좋게 말하면 사적제재로 돌려서 지금까지도 경찰 같은 국가 기관이 검거, 조사하여 합법적인 정식 절차를 거쳐서 처리해야 할 범죄자들을 인근 IRA나 UDA 단원들이 마음대로 찾아서 징벌하는, 즉 공권력 장악의 문제는 완전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과정 중에서 알고보니 마약과는 전혀 상관 없는 무고한 피해자를 복면 쓴 무장 단체원들이 즉결 처형했더라는 식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혹시라도 관광이나 여행차 갈 일이 있다면 정치, 종교적인 주제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주점, 식당 같은 공공시설들은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가톨릭계, 개신교계의 비공식적인 분리가 확실하게 있었던 곳이기 때문에 민족주의 성향의 주점에 유니온 잭이 그려진 옷을 입고 들어간다던지, 반대로 개신교 동네의 식당에서 아일랜드 공화국 삼색기가 그려진 옷이나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면 사방에서 험악한 눈초리가 쏟아진다.


그래도 근본적으로 사람 사는 동네이고, 애초에 북아일랜드 분쟁 자체도 가톨릭계든, 개신교계든 주민들 모두 전반적으로 폭력에 염증이 나서 소강 상태로 잦아든 것이며, 이 사람들도 가슴 아픈 역사와 이에 골치 아프게 엮인 정치, 사회 문제의 그늘 아래 사는 것이지 남들보다 특별히 유별나게 폭력적인 건 결코 아니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먼 곳에서 온 동양인 관광객에게 가톨릭이냐 개신교냐, 아일랜드냐 영국이냐 양자택일하라고 압박 줄 사람은 없다.


북아일랜드의 역사적 배경 이 지역은 그레이트브리튼-스코틀랜드에 무척 가까워서 예로부터 인적 교류가 있었다. 고대에 아일랜드가 팽창했을 때는 아일랜드인들이 여기를 통해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정착하기도 했는데, 후대에 잉글랜드가 팽창하여 아일랜드가 복속되자, 개신교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이 지역에 정착했다(그 가운데는 잉글랜드화, 개신교도화된 아일랜드 출신도 있었다). 아일랜드인들은 여전히 가톨릭을 믿고 있었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얻은 개신교도들이 가톨릭교도들을 박해하면서 분쟁의 씨앗이 뿌려진다. 

20세기 들어 아일랜드는 우여곡절 끝에 독립을 쟁취했으나, 개신교도 수가 가톨릭교도보다 많은 이 지역은 개신교도를 중심으로 영국에 잔류하기를 원하며 반독립운동을 벌였던 곳이었다. 아일랜드의 독립 운동을 주도한 세력들도 북아일랜드 문제로 분열되어 1922년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났고, 결국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국토로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된다. 신생 독립국의 안정을 원한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북아일랜드는 버려진 것이다. 이후 북아일랜드는 끝없는 분쟁으로 세계적인 분쟁 지역이 되었다.


영화 71 벨파스트의 눈물은 민감한 역사적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혼란스러워하는 주인공처럼 중립적으로 한쪽만 부각시키지 않는다.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잉글랜드인이지만 그렇다고 아일랜드인이 나쁘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상황을 바꿔서 보면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급진적인 방법을 선택한 아일랜드인을 살인자로 볼수도 독립투사로 볼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파이로 활동하는 양측의 캐릭터들이 미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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