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이스터 섬의 모아이 거대 석상

(지도:  지도 [이스터섬 ⓒ  google.com. 남태평양 이스터섬,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미스터리. 이스터 섬의 모아이 거대 석상

남태평양에 칠레영토인 이스터 섬에는 아주 거대한 크기에 모아이 석상이 있다.  포리네시아 군도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어 주변 지역과 지리적으로 단절된 이 섬에는 모아이라고 불리는 불리는 거대 미스터리가 위치하고 있다.


(사진:  이서터섬 [이스터섬 ⓒ  google.com. 남태평양 이스터섬,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모아이 거대 석상은 높이가 3m에서 10m까지 3t에서 10t까지 여러가지 크기와 무게에 거대한 석상으로 120평방킬로미터에 불과한 작은 이스터 섬의 동남부 연안에 있는데 모두 바다쪽을 등지고 서 있다.


(사진:  이스터 섬 거인[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quecomoquien.republica.com. 거대 석상 모아이,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모아이 석상의 특징

모아이 석상의 겉모습은 모두 인간의 상반신을 닮았있고, 특히 얼굴부분이 강조되는게 특징이다. 좁은 이마와 큰 코, 긴 귀, 턱을 조금 내밀고 굳게 다문 엷은 입술, 좌우로 붙어 있는 뺨, 낮고 오목한 눈, 눈 부분에는 산호와 붉은 화산암이 박혀 있다. 머리 부분에는 모자 형태의 돌이 얹어져 있는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지금은 이 위에 올라간 모자와 눈부분이 세월에 풍파작용으로 인해 파괴가 된것도 많이 있다.


(그림:  이스터 섬 거인[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google.com. 거대 석상 모아이,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모아이 석상의 운반

이거대한 석상 모아이는 주로 라노라라크 화산에서 채취한 돌을 가공한 다음 섬 이곳 저곳으로 운반해왔던 것 같다. 화산 주변에는 제작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모아이와 돌을 자를 떄 사용했던 흑요석 도구가 남아 있다. 화산암은 흑요석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돌을 자를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이스터 섬에는 나무는 물론 로프로 쓸 만한 목재도 없었기 때문에 운반 방법이 논란이 되기 도 했다. 한때 외계인 설이 한동안 돌았다. 하지만 석상이 만들어질 무렵의 지층에서 야자수 화분이 발견됨에 따라 이런 소문은 사라지게 되었다. 

과거에는 통나무를 굴려서 쓰면서, 로프로 서 있는 채로 모아이를 끌고 왔을 것이라 추측이 있었으나 지금은 석상을 밧줄로 묶은 뒤 양쪽에서 교대로 잡아당겨서 석상이 뒤뚱거리며 앞으로 걷는 듯이 옮겼다는 설이 가장 유력해졌다.


(사진:  이스터 섬 거인[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naturestore.co.kr/. 거대 석상 모아이,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모아이 석상을 밧줄에 묶어서 당기는 방식은 모아이가 걸어왔다라는 섬 주민들의 절설과도 일치한다.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다면 이스터 섬의 문명이 모아이를 건설하기 위해 통나무를 베다가 생긴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멸망했다는 가설은 점점 잇혀져 갔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4.4t의 모아이석상을 이러한 방법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실험에 따르면 석상을 1시간에 약 100m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림:  이스터 섬 거인[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dachshund-of-dream.tistory.com. 거대 석상 모아이,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다만 다른 이견도 있는데 그보다 훨씬 큰 대형 모아이도 그렇게 옮길 수있느냐 점이다. 이스터 섬 최대 규모의 석상은 18m 크기에 400t에 무게가 넘어가기 때문에, 그냥 넘어질수도 있다는 것, 석상의 모습이 무엇을 묘사한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아주 많다. 생김새는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비슷하게 생겼다. 그리고 장이족과 단이족 전설


장이족, 단이족 전설

이스터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선조는 서기 450경 폴리네시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었다. 문화적으로 유사한 면이 많고, 또 거리상으로 남아메리카 대륙보다 훨씬 가깝기 때문에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94년 이스터 섬에서 발견된 인골을 유적자 감식을 통해 조사한 결과 폴리네시아인의 것으로 학인되었다.


당시 이스터 섬에는 야자나무 자라고 있었으며, 바나나와 사탕수수 같은 작물들을 폴리네시아에서 들여와 재배했던 것같다. 점차 인간 생활에 적합한 환경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또 조사를 통해 흙 속에서 탄화한 수목층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섬에는 오래 전부터 나무들이 무성했으며, 사람들은 화전농업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전에 따르면 이스터 섬에 최초로 도착한 사람은 호츠 마츠아라는 왕이 이끄는 사람들이 었다. 그들은 적도 부근에 있었다는 히바 군도의 한섬에 살던 사람들이 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진데다 자연 재해를 비롯한 여러 재난이 몰려오자 섬을 탈출해서 이스터 섬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섬에 들어오게 된 것은, 꿈 속에 마케마케 신이 나타나 그들이 이스터 섬으로 인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꿈에서 신이 일러준 대로 이스터 섬에 도착한 그들은 야위어 홀쭉한 몸에 황색피부와 커다란 귀를 가진 종족을 만났다. 그이후 이 선주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른 새로운 종족들이 나타났다. 아네아 모츠아라는 지도자를 따르는 이들은 어깨에 닿을 만큼 귓불을 길게 늘어뜨린 기괴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독특한 신체적 특징으로 장이족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장이족은 선주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새로운 종족이 었다.


장이족은 먼저 섬에 들어온 호츠 마츠아의 자손들인 단이족을 지배하면서 모아이 석상을 만들도록 했다. 모아이석상의 귀가 긴 것도 바로 장이족의 모습이 반영된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장이족닮은 모아이석상[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dachshund-of-dream.tistory.com. 거대 석상,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모아이 석상의 제작은 1000년경부터 이루어졌다. 이후 600년여 동안 모아이 상은 계속 제작되었다. 그렇타면 무슨 이유로 모아이 석상을 만들었을까? 


17세기에 이 섬은 방문했던 제임스 쿡 제독은 섬 주민들에게 모아이 상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름들에게는 주로 수장이나 왕을 뜻하는 아리키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 구전에는 왕이 죽으면 그 상을 세워 죽은 왕의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모아이 상은 죽은 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금 까지는 유력하다. 부족의 수장은 신의 자손이며, 유력한 부족의 수장인 만큼 그만큼 지위도 높아서 그에 걸맞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즉 조상숭배의 일종인 것이다. 폴리네시아 물화권에서는 그런 독특한 개념이 있었는데, 이스터 섬도 그런 예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볼수 있다.


(그림: 숭배 석상 추측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dachshund-of-dream.tistory.com. 거대 석상,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플랜리와 킹의 고된 노력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풍경이 이스터 섬의 과거에 존재했었음을 밝혀냄으로써 보상받게 되었다. 이스터 섬은 사람들이 이주해 들어 오기 적어도 30,000년 전 그리고 이주 초기에는 황폐한 땅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에 울창한 아열대 숲이 초지 위에 펼쳐진 곳이었다. 숲에는 데이지 나무 줄을 만드는 데 필요한 하후하우 나무 그리고 땔감으로 사용하기 좋은 토로미로 나무 등이 있었다. 숲에서 가장 흔한 나무는 소나무 종류였는데 지금 이스터 섬에는 전혀 찾아볼수 없는 나무였다. 이 소나무는 너무나 흔해서 조사를 위해 수집한 퇴적물의 바닥에는 그 화분으로 가득했다.


이 이스터 섬의 소나무는 지금도 남아있는 칠레의 소나무와 유사한 종류의 것으로 칠레 소나무는 24m의 높이에 직격은 2m나 되기도 하는 것이다. 키가 크고 쭉 뻗은 이스터 섬의 소나무는 석상들을 이동시키고 세우는 데나 커다란 카누들을 만드는 데에 이상적인 재료가 되었을 것이다. 이 나무 또한 중요한 식량 공급원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칠레 소나무의 경우 식용의 열매뿐만 아니라 그 수액으로 설탕, 시럽, 꿀 그리고 술까지 만들어 먹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소나무 시럽 말고 또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뉴욕 주립박물관의 데이비드 스테드만박사는 최근 발굴을 통해 이스터 섬의 동물계 또한 지금과 비교하여 놀라운 것이 었음을 밝혀냈다. 처음 스테드만박사는 이스터 섬에 대해서 다른 폴리네시아 유적의 발굴 경험을 토대로 예상하였다. 대개의 폴리네시아 유직에서는 생전이 주요한 식량으로 나타나서 고대의 쓰레기 더미의 90%정도를 생선의 뼈가 차지 했다. 그러나 이스터 섬의 경우에는 주변의 수온이 너무 낮아서 어류가 좋아하는 산호초가 발달하지 않았고, 언덕들이 해안을 차지 하고 있어서 고기잡이가 용이 하지 않은 자연조건을 갖고 있었다.


발굴 결과 이스터 섬의 초기 900년부터 1,300년 쓰레기 더미에서는 생선의 뼈가 전체의 4분의 1도 채 안되었다. 그 대신에 거의 3분의 1에 해달하는 것이 돌고래의 뼈였다. 다른 어떤 폴리네시아 유적에서도 식량 쓰레기 더미에서 돌고래의 뼈가 1% 이상 출토된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다른 폴리네시아 사회에서는 새나 포유동물로 동물성 식량을 삼았다. 지금은 멸종되어버린 뉴질랜드의 모아나 역시 사라진 동물인 하와이의 날지 못하는 기러기 등이 그 예를 들어볼수 있다. 또 다른 섬에서는 대개 개나 돼지 같은 가축을 기르고 있었다 반면 이스터 섬에서는 돌고래가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동물 사람은 제외하고 이었을 것이다. 이스터 섬에서 발견된 보통의 돌고래들은 그 무게가 165파운드까지 나가기도 했다. 돌고래들은 대개 해안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서 생활하기 때문에 낚싯대나 해안에서 창 따위로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바다 한가운데에서 지금은 사라진 소나무로 만든 튼튼한 배를 타고 작살을 이용해서 사냥해서 물고기를 잡아 먹었을 것이다.


(그림: 모아이 석상 크기 [모아이 석상ⓒ  goolgle.com. 거대 석상,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이런 모든 증거들은 줄기는 결국 한 사회의 멸망이라는 지점을 향하고 있다. 최초의 폴리네시안 이주자들은 비옥한 토양, 풍성한 식량, 풍부한 건축재료, 충분한 영역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모든것들이 갖추어진 섬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들은 번성했고, 또 그  수가 계속 늘어난다.


몇세기가 지난 후 그들은 그들의 조각들이 조각한 것과 같은 석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석상들은 점점 거대해지기 시작했고, 또 10t 이나 되는 붉은 과 들이 석상들에 씌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 관들은 서로 다른 씨족집단간의 부와 권력의 경쟁의 상징이 었을 것이다.

(사진: 이집트 피라미드 스핑크스 [피라미드ⓒ  goolgle.com. 피라미드 스핑크스,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이와 같이 이집트의 파라오도 이전보다 더 큰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그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 있다.


사라진 이스터 섬의 문명 마구 베어버린 소나무

이스터 섬의 인구는 계속 불어나서 점차 숲이 재생산되는 속도보다 빨리 나무 들을 베어내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무를 벤 자리에 정원을 만들고, 나무들로 불을 때고, 카누를 만들고, 집을 짓고 그리고 석상을 옭겼다. 숲이 사라지면서 석상을 옮기고 세우는 데 필요한 통나무와 줄이 떨어지게 되었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개울과 샘이 발라버렸고, 불을 지필 나무도 없었다.


새들, 조개류 또 바닷새들이 사라지면서 식량을 구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졌다. 바다에 타고 나갈 배를 만들수 있는 나무들이 없었기 때문에 고기잡이가 점점 줄었고, 돌고래도 식탁에서 사라졌다. 숲이 사라지면서 비와 바람에 토지가 침식되거나 바짝 말라서 토양의 양분이 고갈되었고, 그 결과 작물의 생산량도 줄었다. 닭고기와 사람고기는 이전의 다양한 식량들의 극히 일부부분만을 대신 할 수 있었다. 남아있는 조각상의 야윈 뺨과 다 드러난 갈빗대는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굶주렸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식량이 고갈되면서, 복잡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이스터 섬의 족장, 관리 및 성직자 들에게 돌아갈 몫이 없이지기 시작했다. 살아 남았있던 섬사람들은 이스터 섬에 도착한 초기의 유럽인들에게 중앙의 권력을 대신한 지역적인 혼란과 전사계급이 세습되는 족장들의 지위를 대신한 사실을 이야기 해주었다. 


1,600년에서 1,700년에 이르는 전사계급의 전성기에 그들은 남긴 칼자국들이 아직도 섬 도저에 남아있다. 1,700년 경에는 서로 적대적인 씨족들이 상대 집단의 석상들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1864년에 이르러서는 그 마지막 석상이 무너졌다.


숲의 면적이 점차 줄어드는 사실을 알아채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을 것이다. 점점 나무들이 없어지고, 작아지고 그리고 덜 중요한 것이 되어갔다. 모든것을 나무에서 얻었던 이 민족이 더이상 추워도 땔수있는 땔감이 없고, 얻을게 없어서 나무와 문명이 사라지지 않았을 까 추측해본다.


(그림:  이스터 섬 거인[이스터섬 모아이 석상ⓒ  dachshund-of-dream.tistory.com. 거대 석상 모아이, 포토샵 , 수정: 닥스훈트의 꿈)


다른 전설에 의하면 라파누이 사람들이 처음 이스터 섬에 들어왔을 땐 이스터 섬은 숲이 우거진 섬이였다. 하지만 이스터 섬에 모아이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고 낚시를 하기 위한 카누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는 등 나무를 빠른 시간 안에 소모했다. 원래 모아이는 눈이 달려있었고 모자를 쓴 상태였다. 그런데 라파누이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모아이를 만들어대기 시작하면서 나무를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소모했다. 결국 나무는 모두 소모했으며 카누를 만들 나무조차 남아잇지 않아서 외부로 나갈 수 조차 없게 되어 라파누이 사람들은 이스터 섬에 고립된 시세가 되었다. 이후, 철저하게 그 섬 안에서만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사람들은 카누가 없어서 낚시를 할 수 없게 되었으며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인육을 섭취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게다 일반적인 농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땅이 척박해지면서 돌뚜껑 농법으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결국 자신들을 기아에 허덕이게 만든 원흉인 모아이를 훼손하기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모아이의 눈과 모자를 파괴했다. 그래서 모아이는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이후 살아남은 몇 안되는 라파누이 사람들은 조인의 형상을 한 마케마케라는 신을 모아이 대신 숭배했다. 아마도 마케마케를 숭배함으로써 새처럼 날아 하늘을 날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것이며 하늘을 날아서 이스터 섬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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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댓글  수정/삭제 그린
    2018.12.15 17:41

    흥미 있는 이야기 잘 풀어 주시네요.
    이스터 섬의 석상의 크게 다시 한번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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