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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북아일랜드 평화 협정으로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되는가?

dachshund-dream 2018.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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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북아일랜드 평화 협정으로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되는가?

PD수첩이 북아일랜드 분단과 통일 과정을 통해 한반도의 미래를 내려다보았다. 5일 밤에 방영된 MBC 다큐 프로그램인 PD수첩은 북미 정상회담 막전막후로 꾸몄다. 이날 영국의 식민지로 800년간 지냈던 아일랜드가 소개됐다.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했지만, 주로 영국인이 이주해 정착했던 북아일랜드는 독립을 반대했다. 이에 북아일랜드를 가로지는 장벽이 세워져 도시가 둘로 나뉘어졌다. 그건 마치 한반도에 38선을 보는 듯한 모습이였다.

(캡쳐: PD수첩 북미 정상회담 막전막후편 편[평화 협정 ⓒ  mbc.co.kr, PD수첩  평화평전 .포토샵, 편집:닥스훈트의 꿈)


한반동의 영구 평화는 실현될가?

북아일랜드 펜파스트 평화 협정 한반도 종전 후 우리의 미래

전쟁후 여전히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 과연 평화가 정작될 수 있을지? 아직 속단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한반도 평화는 이제는 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부름이다. 누구도 안정과 평화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한반도 냉전을 외치는 자들이 존재할 뿐 절대 다수의 국민은 한반도 평화를 원하고 있다.

(캡쳐: PD수첩 북미 정상회담 막전막후편 편[평화 협정 ⓒ  mbc.co.kr, PD수첩  평화평전 .포토샵, 편집:닥스훈트의 꿈)


수구 냉전 세력들의 가치는 한반도 불안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그런 논리로 정치를 해왔던 자들에게 갑작스러운 변화는 두려울 수도 있다. 오직 수구 냉전 외에는 정치적 수단이나 방법도 없던 그들로서는 모든것을 잃을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니 말이다.

트럼프대통령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회담 취소라는 강수를 뒀을 때 주변국의 태도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중국과 러시아 만이 아니라 유럽 유러 국가들 역시 회담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반도 평화가 곧 세계 정세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에 아베정권은 달랐다. 트럼프대통령에 결정을 존중한다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냉전이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의 맥을 공유하고 있는 자한당과 바미당 역시 동일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들에게 한반도 평화는 절대 와서는 안되는 불편한 현실일 뿐이니 그이상도 아닌 것 이다.

일본 아베정권과 국내는 극우주의자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한반도 영구 평화가 정착되기를 원한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전쟁은 곧 파멸을 부를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 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 앞에서 4.27 남북회담 전에 김정은을 제거해 달라고 요구하는 한심한 자의 외침 속에서 수구냉전 사고가 쉽게 변하기 어려울 정도에 확신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자한당 대표는 직접 편지를 보내 회담을 반대하는 외침을 보내기 여념이 없었다. 섬세하고 세심하게 다뤄야 할 관계 회복 상태에서 판을 깨고 싶어하는 한심한 자들의 몸부림은 그들의 뜻대로 될 수 없다. 그들이 원하는 수구 냉전 사고는 이미 오래전 사라진 적폐일 뿐이니 말이다.


북아일랜드는 오랜 시간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한 아일랜드 하지만 북아일랜드에 남은 영국계와 분쟁은 심각한 수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위와 분쟁 과정에서 영국군의 시민들에게 총을 사용했고, 이에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분쟁은 심각한 수준으로 확대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일랜드 분쟁사건은 영화로도 많이 소개가 되기도 했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가장적 대표적인 영화일 것이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면서도 흥미롭게 풀어간 이 영화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이니 말이다.


[71 펠파스트의 눈물]

1971년 영국인 후크는 어린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군대에 입대한 이야기 부터 시작된다. 모진 훈련을 끝내고 마침내 실전에 배치되던날 부대 내의 분위기는 어딘가 모르게 아주 긴박한 느낌으로 진행되고 그가 배치된 곳은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펠파스트였다. 이곳에서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구교도와 영국의 잔류를 주장하는 신교도 사이에 갈등이 폭발,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있었다. 이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영국군이 주둔하게 됐고, 후크 이등병은 공식적으로 이 부대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현장에 배치된 첫날 후크는 IRA(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통일을 주장하는 반 군사조직) 색출 작전에 투입하게 된다. 이곳의 풍경은 더업이 살벌했다. 가택을 수색하는 영국의 경찰과 군인에 반감을 드러내던 북아일랜드인들이 거리로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시위대가 던진 돌 등에 의해 군인들이 맞아 부상자가 속출하고, 이에 흥분한 군중들은 더욱 거칠어져 가고 그때 부상 당한 군인이 놓친 총을 한 소년이 탈취하여 도망을 가고, 후크와 그의 동료는 그 소년에 뒤를 쫓는다. 그 사이 충돌은 더욱 격해져, 이를 피하기 위해 영국군은 퇴각을 결정한다.


(영화캡쳐: 71 벨파스트의 눈물[소년의 총탈취 장면 ⓒ  www.71-film.com, (주)액티버스엔터테이먼트 .포토샵, 편집:닥스훈트의 꿈)


후크와 그의 동료만이 현장에 남겨진 상황에 총기 회수를 위해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에 그들은 북아일랜드인들에 둘러 싸여 집단 폭력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갑자기 들어닥친 일군의 청년들에 의해 후크의 동료가 총에 맞아. 그자리에서 숨지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게 된다. 곁에서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한 후크는 목숨이 경각에 달했음을 직감하고, 그곳으로 부터의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고 구조가 늦어지면서 후크가 겪게 되는 고추는 이만저만이 아니였지만 상상 이상이였다. 북아일랜드나 아일랜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데다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그가 겪는 고통과 아픔은 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후크의 믿음은 사실상 강력한 위계질서와 명령체계에 의해 유지되는 거대한 조직 앞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북아일랜드 사태는 후쿠에게 더없이 혼란스럽게 다가올 뿐이었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고추와 군 조식의 형태는 그를 더 혼란 스럽게 할뿐이었다. 후크의 직접적인 심리 묘사는 없었으나 그가 몸소 느낀 고통, 아울러 북아일랜드 시위현장에서 드러나던 광기, 그리고 군 조직의 파렴치함을 바라보면서 혼돈이라는 진동이 느껴지게 하는 영화 71 펠파스트의 눈물 내용이다.


같은 영화는 직접적으로 북아일랜드 분쟁을 다뤘다는 점에서도 당시를 알기에 중요한 자료와 같다. 카톨릭계 아일랜드인과 개신교계 영국인들 사이의 분쟁은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싸우는 상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나 다름 없는 시간들을 30년 넘게 보낸 그들은 평화를 선택했었다.


어느 한편의 입장을 대표하는 통일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공존의 삶을 선택했다. 벨파스트에 38선처럼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분쟁을 피하고 서로 행복한 삶을 찾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와 영국의 평화 협정은 당시 그곳 정치인들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었다.

극단적인 발언으로 평화를 외면하고 오직 상대를 제압하는 것만이 고유한 가치라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형태는 절대 다수 국민들을 이길수는 없었다. 70%가 넘는 국민들은 평화를 원했다. 더는 분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없었던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과거 평화협정을 맺을 당시 불만을 토로했던 이들도 시간이 후른 후 당시의 선택이 옳았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다. 더는 싸울 일이 없으니 평화로운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생각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평화는 그렇게 언제나 두려움에 살아야 했던 펠파스트를 완전히 바꿔 놓기 시작했었다.


(캡쳐: PD수첩 북미 정상회담 막전막후편 편[평화 협정 ⓒ  mbc.co.kr, PD수첩  평화평전 .포토샵, 편집:닥스훈트의 꿈)


피와 시체가 가득했던 펠파스트

이제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행복한 도시로 변화했다. 그 모든 시작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었다.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가진 그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분쟁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카톨릭계 아일랜드인과 개신교계 영국은 이제 절친한 친구이다.

여전히 서로의 신념은 다르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틀어질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가 믿는 신념은 다르지만 이를 인정하는 순간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될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로를 미워하고 싸우기 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사실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사람들은 깨달았기 때문이다.

수구 냉정 체제는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거대한 이념이다. 시대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과거의 수구냉정 사고방식을 앞세우고 있는 정치세력들은 그것만이 자신들을 지탱하는 유일한 가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한반도 긴장을 유지하려는 집단은 이제는 사라져야만 한다.


(캡쳐: PD수첩 북미 정상회담 막전막후편 편[평화 협정 ⓒ  mbc.co.kr, PD수첩  평화평전 .포토샵, 편집:닥스훈트의 꿈)


절대 다수가 원하는 평화를 외면한 채 오직 한반도 불안을 앞세워 권력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현재의 변화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맹신하던 트럼프 대통령 조차 불신하는 그들의 사고 체계 속에서는 공포와 불안이 곧 권력의 시작이라는 확신만 존재할 뿐이다.

북아일랜드의 현재는 한반도의 미래라고 할수 있다. 긴장을 온화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북아일랜드는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역시 이런 영구적인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이고 그런 미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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